2021. 8. 16. 00:26ㆍ소비러/오프라인
4월 말에 다녀온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사이트에서 사전 예약해서 다녀온 딜쿠샤 관람기다.

딜쿠샤(DILKUSHA)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1924년에 완공된 앨버트 W. 테일러, 메리 L.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이다. 앨버트 W. 테일러는 3.1 운동을 세계에 알렸던 AP 통신원이기도 했는데 이후 1942년, 일제가 부부를 추방하고 그 집은 여러 사람의 소유로 넘어가다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거처로 개조됐다가 2005년 발견 당시에는 딜쿠샤 저택에 12세대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2005년, 테일러 부부의 자식인 브루스 T. 테일러의 의뢰를 받아 딜쿠샤를 찾았고 2016~2018년 테일러 부부의 손녀인 제니퍼 L. 테일러가 딜쿠샤 유물을 기증했다. 2017년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쿠샤)이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등록됐고 2020년 복원공사가 완료돼 전시관을 올해 개관했다.
딜쿠샤에 대해 어디서 주워듣고 얼른 개관하길 기다렸는데 마침 4월에 사전예약을 받는다고 하여 예약을 하고 갔다.
-
그리고 관람기를 쓰는 8월 현재, 찾아보니까 8월에도 예약 가능하다.
https://yeyak.seoul.go.kr/web/reservation/selectReservView.do?rsv_svc_id=S210707104240319583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
한번에 쉽게 간편하게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
yeyak.seoul.go.kr
선착순 예약이고 무료인데 별도의 주차장은 없고 당일 예약 취소는 안내실로 연락하라고 한다.

독립문역 3번 출구 쪽으로 나와, 길을 한 번 건너고 사직터널 위 언덕으로 올라가다가 좌회전을 하면

굉장히 큰 은행나무와 딜쿠샤가 보인다. 딜쿠샤보다 옆의 큰 나무에 감탄하면서 올라갔다.
예약 시간에 맞춰 밖에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면 직원분이 나오셔서 앞의 신발장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오라고 한다.

관람 시간까지 좀 남아서 여기저기 기웃댔다.

집 밖에 집 이름을 적어놨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까 2005년에 딜쿠샤 집을 찾는 과정에서 이 정초석과

이 은행나무가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한다.

삿포로대학교에서 처음 알게 됐지만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큰 나무들을 엄청 좋아해서 이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무 구경을 했다.
-
관람 시간이 됐고 직원분이 나와서 딜쿠샤에 관련된 간단한 설명을 해주곤 입구의 신발장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와달라고 했다. 갈아신고 들어가면 차례대로 QR코드 체크인 및 사전 예약 목록을 확인했다. 장소가 협소하니 백팩 등 짐은 무인보관함 혹은 안내 직원에게 맡기는 것을 권장한다.
전시 순서는 딱히 없어 2층부터 관람해도 되는데 코로나19 거리두기로 한 방에 여럿이 모여있지 말아달라고 했다(백팩 맡기고 그러다 보니까 여유가 생겨서 나는 1층 입구부터 천천히 관람했다). 사진 촬영은 가능한데 동영상 촬영은 안 된다고 들은 것 같다.

서양식 건축기법으로 지은 서양식 2층 집이지만 1920~30년 당시 국내 환경과 여건을 고려해 건축됐다.

벽난로가 제일 먼저 눈에 보였다.

창밖의 은행나무도 보고

미국인 사업가 앨버트 W. 테일러와 영국인 연극배우였던 메리 린리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저 호박 목걸이와 귀걸이로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메리 린리 테일러가 쓴 '호박 목걸이: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 책 제목의 목걸이가 사진의 그것이라고.

'테일러'와 비슷한 발음인 태락(台樂) 문패가 재밌어서 찍었고 그 옆은 딜쿠샤 화재 기사 및 가족 앨범이다.

가족 앨범에 있던 사진을 참고해서 재현해 꾸몄다. 당연하지만 만지면 안 되고 눈으로 관람만 가능하다.


아직은 공사 중인 것 같은 테라스와 마당

거실을 거쳐 옆 방으로 와 창밖을 찍었다. 나라면 이쪽에 잔뜩 식물을 두고 키우고 싶다.

위 사진에서 살짝 각도를 낮춰서 찍은 건데 관람 불가하지만 지하 1층은 창고라고.


메리 L. 테일러는 연극뿐만 아니라 회화에도 조예가 깊었다.


딜쿠샤로의 귀향: 1942년 부부는 조선총독부의 외국인추방령에 강제로 한국을 떠났고 1948년 6월, 앨버트는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고 메리는 남편의 유해와 함께 1948년 9월 인천으로 입국했다. 마음의 고향인 한국에 돌아오기를 바랐던 앨버트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의 아버지 옆에 묻혔다. 메리는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딜쿠샤를 방문했다.
복도 쪽 보이는 흰 문은 화장실인데 매우 깨끗하게 관리됐다! 걱정 말고 써도 된다.

안내 책자랑 비교했는데 저 가방은 별로 안 컸다.

이 경로로 추방됐다고.




2층 도착.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故한상수 선생님의 전수교육조교인 김영이 선생님이 제작한 '자수화조도병풍'

1층 거실보다 취향이었던 2층 거실

내가 눈독 들였던 '주칠원반'.
이 주칠원반은 궁중에서 사용한 반상의 한 종류로 현재는 구매하기가 어려워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호 칠장 손대현 선생님에게 제작을 의뢰했다고.

초코 파운드같이 생긴 1인용 소파와 저 상도 너무 탐났다. 주말 오후에 저기 앉아서 책 읽고 싶었다.

이쪽 벽난로는 비교적 꾸준히 보존된 것 같다.

파노라마로 천장도 찍어보고.




이렇게 3겹 공동벽 쌓기를 해서 방수와 단열에 신경 썼다.

건축 정보는 여기까지.


은행나무도 다시 봐주고.

2층 베란다. 이쪽에도 식물을 잔뜩 키우고 싶다. 나무 같은 거 둬도 좋을 것 같다.

방마다 벽난로가 있었던 것 같다.



우연히 독립선언서를 발견해 3.1 운동을 함께 전했다.


반대편에서 찍은 2층 베란다.




동시대의 언론인 자료


피난민들이 개조해 살았을 때 이렇게 벽난로를 뜯어서 생활했던 것 같다.

관람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다시 찍은 딜쿠샤...인데 영 맘에 안 들지만 딜쿠샤 대표 이미지로 이 사진만 한 게 없다.... 그런데 정말 문화재치곤 주변 주택과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서 생소했다. 주민들은 찾아오는 관람객에 불편하진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누가 직원분이랑 대화하던 걸 주워 들었는데 '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 건물도 딜쿠샤와 비슷한 양식 건축물이라고 한다. 나중에 가봐야지.

언덕을 내려오면서 찍은 안내판과 한눈에 봐도 엄청 큰 은행나무 씨

아무리 멀어져도 은행나무는 잘 보인다.

독립문역 쪽으로 내려오면서 찍었다.
-

밥은 근처의 대성집에서 먹었다.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 막 끝난 5시여서 대기 없이 들어갔다. 도가니탕을 시켰는데 도가니도 꽤 들어있고 무난했다. 포장도 많이 해가던데 반찬은 안 주지만 미리 준비해놔서 빨리 가져갈 수 있는 것 같다.
'소비러 > 오프라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MINIATURE LIFE SEOUL (0) | 2022.01.08 |
---|---|
이불ㅡ시작 (0) | 2021.09.24 |
21년 3월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MMCA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 올해의 작가상 2020, 이승택 거꾸로, 비미술) (0) | 2021.07.18 |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0) | 2021.07.04 |
뮤지컬 위키드 1차, 2차 (2) | 2021.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