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8. 13:15ㆍ소비러/오프라인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190809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관 - 때는 퇴원에 요양까지 하고 난 여름이었고 회사 복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연차를 쓰지 않는 이상, 회사 다닐 때는 주말만 시간이 되니까 전시를 찾다가 갔다. - <로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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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포스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2달 만에 국중박에 또 갔다.

국중박 입구의 이곳이 너무 좋다. 대나무 화분과 뻥 뚫린 광장, 그 뒤로 남산타워까지 보이는 이 곳.

이 날은 검무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이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오늘의 공연장인 극장 용이 나온다.



좌석은 A열이다ㅎㅎㅎ
일하다가 문득 <세종, 1446> 공연이 좋다고 들어서 찾아봤더니 좋은 자리가 남아서 냉큼 예매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측면에서만 찍고 들어갔다.


무대는 깊고 조명 때문에 배우들 키가 감안이 안됐다. 내 좌석이 왼쪽에 치우쳐서 어떤 각도에서는 사람 얼굴이 안 보이지만 진짜.... 와.... 배우 눈물까지 너무 잘 보였다.
내 옆자리 사람은 용포 야구점퍼를 입고 온 사람이었는데 딱 봐도 N차 관람했을 것 같았다. 고마웠던 게 뒷사람이 툭툭 치는 것도, 옆 사람이 부스럭 거리는 것도 기민하게 알아차리곤 인터미션 때는 주의도 시켰다.
나는 A열이었지만 무대 바로 앞에는 단차 없는 2줄의 좌석이 있었다. 거의 80퍼센트의 출석률과 훌륭한 관람 매너로 이분들은 또 얼마나 봤을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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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반한 공연이라 스포일러(...)라고 하기 애매하지만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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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후기: 무대장치도 안무도 넘버도 배우들도 다 좋다! 였다.
소현왕후 역할은 내내 슬픔, 억울함이 기본이어서 너무 괴로웠다. 아버지가 역모로 몰리는 상황에서 주먹을 쥔 손이 떨리는 연기까지 정말.. 대단했다. 세종의 로맨스는 소현왕후와 있을 것 같았는데 장영실 부분에 쏠렸었다. 왜일까... 소현왕후는 어항 속 물고기이기 때문이어서일까....
뮤지컬의 주인공은 전부 고통에 산다지만 이 극은 실존했고 현재도 존경받는 위인이 주인공이다 보니 악역이 판을 쳤다. 아버지도, 형도, 아버지네 충신도, 다른 신하들도 다 곶통이었다.
뮤지컬 세계에서 주인공으로 태어났다면 절대 못 살아남을 것 같다.... 전개 단계에서 이미 도망갔을 것 같다... 너무 무서운 뮤지컬 세계....
이때 기묘했던 사연이 있었다.
세종이 태종에게 꼭두각시처럼 시달리다 독립하려고 부딪히는 장면이었다.
세종이 "아버지는 이제 정치에 참여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니까
계속 부스럭거렸던 사람(옆 사람의 옆)이 “잘됐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놀라서 쳐다보니까 할머니셨다. 할머니는 “늙으면 죽어야 돼.”라고 덧붙였고 따님이 ”엄마! 조용히 해!”라고 했다.
어....... 기묘..... 미묘.....

그렇게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에 1부 후기를 적고 있는데... 이 공연은 청소년 단체 관람이 다수였다. 아무래도 위인이다 보니 교육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기엔 양녕이 <열매> 부르면서 궁녀들 희롱하는 게 좀 걸쩍지근하지 않습니까?....
여하튼 너무 좋아서 잠깐 나가서 프로그램북을 사면서 전시물에 사람들이 없기에 측면에서 찍었던 걸 정면에서 다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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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후기:
시작부터 갑자기 태종이 죽고 세종이 수염 붙이고 나와서 처음에 못 알아봤다. 수염 하나로 인상이 이렇게 바뀔 일인가.!
전해운까지 수염을 붙였지만 사대부와 호위무사는 안 붙였다. ㅋㅋㅋㅋ 뭐야 ㅋㅋㅋㅋ 메타인가? ㅋㅋㅋㅋㅋ 다음 대의 젊은 인간으로 교체했다는 거야, 아니면 그냥 그 사람들 취향이야? ㅋㅋㅋㅋㅋ신체발부 수지부모잖아ㅋㅋㅋㅋ
여하튼 2막에서도 장영실과의 브로맨스는 여전했다. 노비 출신(어머니가 관노) 장영실이 역술 관련 기기를 완성한 것에 보수진영이 트집 잡으니까 장영실이 꼬투리 잡히게 하지 않으려고 그거 불태우고 그 죄로 죽었다...
자꾸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고 떠나니까 세종은 슬퍼하며 늙는다. 늙고 눈이 안 보이니 불을 더 켜달라고 한다. 충분히 초가 많은데도... 조명이 없어 어두운 무대에 등이 늘어나 시각적으로 너무 아름답지만 슬펐다. 세종은 쇠약해져서 피 웅덩이의 사람 죽이는 왕인 아버지와 양녕의 망상을 본다...
1막에서 늘 울고 불안했던 소현왕후는 인터미션 때 남 모르게 각성이라도 한 것인지 2막에서 멘탈 힐러가 됐다. '임마, 나도 힘들었어. 니가 어떤 나라를 만드나 보려고 참았다 짜샤...'식으로. 그렇게 멘탈을 되찾은 세종은 진짜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훈민정음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 내 뒷자리 청소년들은 지루한지 계속 툭툭 발로 찼고...
그리고 건강한... 전해운은 이때를 틈타서 세종을 죽여 고려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한다. 세종의 수염 없는 호위무사를 물리치면서까지.(이 극은 액션도 엄청나다. 와이어까진 아니더라도 도포 날리는 사극 액션을 볼 수 있다!)그런데 세종은 사실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고려 사람도, 조선 사람도, 백성까지도 위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고 나중에 자기가 그런 나라를 못 만들면 그때 죽여달라고 그를 보낸다. 그는 세종 자리에 가서 만든 훈민정음 본다.
여차저차... 세종은 멘탈 힐러 소현왕후와 대화하다 승하한다.
커튼콜 직전, <그대의 길을 따르리>에서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백성의 소리를 담아 스물여덟 자 만드니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 하여 훈민정음이라 하노라" 대사에서, 해례본 첫머리를 속으로 줄줄 외우면서 아 시발 나 국문과였지(훈민정음해례본 똑같이 암기하는 게 전공 시험 문제 중 하나였다)라고 과거를 떠올렸다... 끌끌...
후기: 와우 역시 좋았다.... 만족 만족... 포스팅으로 정리하면서 다시 떠올려도 좋았다. 신하들이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장면이 정말 압박되고 무서웠다.

공연을 다 보고 뭉클한 감동에 남산타워를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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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온 게 아까워서 저번에 못 둘러본 박물관 2층을 조금 구경했다. 역사 관극을 봤으니 먼저 서화 쪽으로 갔다.

초상화를 이렇게 제작했다 합니다. 유화처럼 하나의 캔버스로 그리는 게 아니라 뒤집어 가면서 쏠리지 않게 그린 것 같다.


해태였나 사자였나, 이 방이 편안하고 좋았다. 의자라도 있었으면 앉아서 쉬다 갔을 것 같다.


'청자 동자 모란 무늬 완'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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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항상 가벼운 마음으로 보지 않고 지칠 때까지 보는가! 더 못 보고 나왔다.

배고파서 푸드트럭에서 닭꼬치를 사 먹고 집에 왔다. 사진이 실제보다 더 맛있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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