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베카

2020. 3. 26. 23:22소비러/오프라인

뮤지컬 레베카

200108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늘 그렇듯 나는 취소표로 뮤지컬 레베카, 그것도 옥주현 님의 댄버스(이하, 옥댄) 공연을 잡았다! 류정한 님의 막심도 보고 싶었지만 옥댄과 같은 캐스팅 날 취소표는 안 나와서 그건 또 언젠가 보기로 하고 일단은 잡은 거라도 보러 갔다.

 

 

 

충무아트센터

 

 

회사랑 집, 공연장이 애매하게 있어서 연차를 썼다. 먼저 표부터 받으러 2층에 올라가갔더니 줄이 이미 서 있었다. 8시 공연인데 시작 1시간 30분 전인, 6시 30분이 돼서야 매표를 시작했다.

 

 

이 날의 캐스트
1층 12열 3번

 

 

표를 받고 또 줄을 서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공연장에 올 때부터 설렜지만 오늘의 캐스트에서 옥댄 액자를 실물로 보니까 내가 옥댄을 본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염치와 예절을 겸비한 평범한 현대인이므로 광대로만 웃었다.

이렇게 블로그에 써서 기록(자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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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연차를 쓰고 집에만 있었어서, 저녁은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미리 공연 근처의 맛집들을 찾아보고 오챠드 1974에 갔다. 가니까 이미 대기가 있었지만 공연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대기 명단에 이름을 적고 30분을 기다려서 들어갔다.

 

 

엔쵸비 오일 파스타

 

 

자리에 앉아서도 좀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맛은 그냥 그랬다. 그렇게까지 기다려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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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서 근처 카페에 까눌레가 괜찮은 데가 있다고 해서 갔다. 가다가 일본인 관광객에게 잡혀서 지도를 보고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만 유명한 듯한 화장품 할인점으로 가는 길을 알려줬다.

 

 

솔직히 너무 강렬해서 찍었다.

 

 

카페에서 까눌레들을 포장하고 공연장으로 가려는데 옆 건물이 무시무시해서 사진을 찍었다. 주변에 카페가 많은데 이 점집은 뭘까.... 범접할 수 없어서 찍어뒀다.

그리고 얼마 전에 <밥블레스유2> 1회를 보다가 저 집이 나와서 놀랐다. 방송으로 보니까 점집을 테마로 꾸민 칵테일바였다. 오른쪽 석상이 비밀문이어서 열고 들어가면 신비한 인테리어의 칵테일바가 기다리고 있다. 방송이 아니었으면 영영 점집으로 오해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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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내부와 아까 포장해온 까눌레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왼쪽으로 많이 치우쳤지만 이게 어디인가. 내가 옥주현 님 공연을 보다니, 내가 옥댄을 보다니!!! 공연 전은 늘 떨리지만 이번 공연은 특히 더 기대가 됐다.

아까 주신당 옆 카페인 더 피터 커피에서 포장한 걸 찍었다. 까눌레는 플레인, 커피, 말차를 먹었는데 플레인이 제일 맛있었다. 하지만 굳이 찾아가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22.... 이 날 선택한 음식들이 줄줄이 그냥 그랬다.

여하튼 시간이 돼서 공연이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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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소비러 글에 공연과 관련 없는 여정은 여기까지다.

이제야 공연 얘기를 하려니까 머쓱하지만...

 

이 글에는 뮤지컬 <레베카>와 관련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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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후기:

와! 진짜 옥 너무 좋다! 듣던 대로 최고였다! 어떻게 기대를 많이 했는데도 좋지?ㅠㅠㅠㅠ 옥주현 님 오래오래 해주세요.... 정말.... 옥주현 님의 <영원한 생명>, <레베카>는 입 벌리고 봤다....

자리가 애매해서 표정 윤곽만 알아볼 정도였다. 무대도 의상도 멋졌다. 사실 오프닝부터 반했다.

화자인 나(이름을 모르겠어서 찾아보니까 정말 이름이 없다. 막심과 결혼하고 나서 막심의 성을 따라 드윈터 부인으로 부르는 것 외엔 이름이 불려지지 않았다고. 반대로 레베카는 제목부터 레베카로, 공연 내내 이름이 불렸지만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게 같은 드윈터 부인임에도 인상적인 대비였다.)가 과거 맨덜리 저택의 일을 회상하는 걸로 시작한다. 나가 선을 긋는 대로 맨덜리 스케치가 무대 은막에 투영되는데 선 뒤로 사람들이 서더니 움직였다. 나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고 과거의 회상이 현재 무대에 세워지는 연출이 아름다웠다.

몬테카를로에서 나와 막심이 연애했을 때는 둘이서 수시로 키스하고 러브러브한 분위기였는데 맨덜리 저택에 가고 댄버스 부인이 나오니까 호러 스릴러로 바뀌었다.

댄버스는 내가 여태까지 본 극 인물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레베카와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서 맨덜리 저택에 들어왔고 그가 죽고 없는 지금까지도 엄청난 집착과 애정을 담아 숭배한다. 레베카의 방에서 머리를 빗어주던 것을 추억하며 잠옷도 만지고 걸친다. 댄버스가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레베카는 대체 어떻게 죽은 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택 계단에 있는 액자의 주인공은 레베카로, 댄버스가 나를 속여서 그녀처럼 입힐 건 예상했는데... 보트 보관소 근처에서 만난 걸인 벤은 또 뭘 보고 두려워하는 거지? 살인의 추억 영화에서 백광호(극 중 강간 및 살인 피해자 이름인 ‘향숙이’를 언급했던) 같은 느낌의 역할인가? 그 와중에 레베카는 사촌인 잭 파벨과는 근친상간 관계였다는데 댄버스는 파벨의 말을 비웃곤 어떤 남자도 그녈 갖지 못했다고 말한다. 레베카, 당신.... 정말 어떻게 죽은 거야....

이렇게 레베카의 죽음에 집착하면서 1부가 끝났다. 레베카... 당신이란 사람 대체.... 어떻게 살다 죽은 거야....

 

 

 

그리고 잠깐 나와서 공연 전에는 사람 때문에 못 찍었던 포토존을 찍고

 

 

레베카에서 가장 유명한 그 장면을 다룬 레고. 빙글빙글 돌아간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고도 찍었다. 애초에 비매품이었지만 작은 버전을 팔았으면 샀을 것 같다. 멋지다.

사진들을 찍고 공연장에 바로 들어가진 않고 이 옆에서 1막을 본 감상을 적었다. 이때 적은 감상을 묵혀놨다가 읽을 수 있게 걸러내고 퇴고하고 포스팅한다. 걸러진 건 대충... 화자인 ‘나’에게 이름이 불리지 않은 것도 모르고 그냥 모르는 거라 생각해서 편의상 천사(이중법적인 '성녀-악녀' 설정을 환멸을 느낌에도 불구하고)라고 지칭한 거나 오래 앉아서 보느라 꼬리뼈가 아팠다, 이런 거다.ㅋㅋㅋㅋ

그렇게 잠시 쉬고 레베카의 죽음과 맨덜리 저택의 결말을 향한 2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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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후기:

생각 없이 쓰다 보니 줄거리부터 정리했다.

 

((2부 줄거리:

무도회는 끝났고 나는 막심을 찾으러 방에 가지만 나를 기다렸던 건 댄버스 부인이었다. 나가 왜 자신을 속이고 미워하냐고 물으니까 댄버스는 참았던 화를 터뜨리듯, “감히 너 따위가 드 윈터 부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으니까” 소리쳤고 예의 그 빙글빙글 도는 무대가 되면서 레베카(긴 버전)를 부른다. (진짜 최고ㅠㅠ 엉엉...)

넘버가 끝나자 돌아가던 무대는 멈췄다. 댄버스는 나를 바다 쪽으로 난 창문으로 몰아 너는 살아 마땅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죽어서 편해지라고 자살을 독촉한다. 나가 겨우 거부하던 찰나에 바다에서 경보가 떠서 나는 창문과 방과 저택을 벗어나 해변가로 뛰쳐나갔다.

해변가로 가니까 바다에서 좌초된 배가 발견돼 경보음이 울렸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막심이 그 배에 탄 것은 아닌지 불안한데 평민들은 보물을 캐겠다고 물질을 하는 사람과 사람을 구하겠다는 사람으로 복잡한 와중에 레베카의 사촌 잭을 마주한다. 잭은 해안가로 온 게 재밌을 것 같아서 왔으며 사람들이 괴롭고 슬퍼하는 걸 보는 게 좋다고 헛소리하는 걸 피했다.

좌초된 배 말고도 레베카의 시체가 있는 보트가 발견됐다. 순서가 가물가물한데 막심과도 만난다. 나는 막심이 무사한 걸 보고 안도했지만 막심은 화를 낸다. 나는 막심이 그녀를 사랑해서 그런 거냐고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는 레베카를 사랑한 적이 없고 오히려 증오했다면서 칼날 같은 그 미소를 부른다. 레베카는 아름다운 외모로 접근해, 결혼을 하고 나서 보트 보관소에서 많은 남자와 잤고 그런 자신을 간섭하지 말라고 당신 집안에 이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고 계약을 제안했다. 레베카가 사망한 그날 밤, 레베카는 자신의 방에 없었고 보관소에 누군가와 같이 있을 줄 알았지만 혼자 있었다. 막심은 레베카에게 계약을 언급하며 화를 냈지만 막심과 마주한 그녀는 비웃으며 자신은 임신을 했다고, 나는 완벽한 부인과 엄마를 연기하고 너는 멍청한 아빠를 연기하라고 했다. 그 말에 막심이 폭언을 하며 밀쳤지만 비웃던 표정 그대로 죽었고 자신은 보트에 넣어 가라앉혔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죽은 그녀가 자신을 이겼다고 괴로워하자 나는 이 사실을 누가 아냐며, 아무도 모르니 그녀가 자살한 걸로 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과 이날의 밤의 창문밖에는 벤이 모든 걸 보고 있었다.

덴버스에게서 살아남고 막심의 고백을 듣고 나서 나는 강해졌다. 레베카의 흔적들을 치우고 댄버스 부인이 하던 집안의 통솔을 자신이 하면서 댄버스에게 이 집주인은 자신이라고 말한다. 또 레베카의 살해 용의자로 재판에 서는 막심에게 그럼에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덴버스와 파벨은 무대의 위층에서 재판을 지켜본다.(둘이 내가 앉은 왼쪽 위에 있어서 좋았다! 반대로 보트 보관소는 무대 오른쪽이어서 잘 안 보임) 막심에게 살인 용의가 몰리고 막심은 레베카가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와중에 댄버스는 역시 네가 죽였지라고 말하듯이 손가락으로 막심을 가리킨다. 재판은 나가 기절한 척해서 미뤄졌고 사람들은 맨덜리 저택으로 돌아왔다. 바깥에는 비가 내렸다.(비 오는 연출도 좋았다.)

파벨은 레베카가 자살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으니 막심에게 돈을 달라고 촐랑대면서 협박한다. 마침 재판 담당인지 해군 대령이 와서 파벨에게 그 증거가 뭐냐고 해서 보니까 레베카가 사망한 날짜에 받은 편지였다. 자신은 런던에 있어서 나중에서야 편지를 봤지만 할 말이 있으니 보트 보관소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벤을 증인이라고 데려오지만 벤은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공신력이 없다며 돌려보냈다. 한 푼도 챙길 기미가 안 보이자 마지막으로 레베카에 대해선 모든 걸 다 아는 덴버스에게 물어보면 될 거 아니냐고 해서 덴버스가 레베카의 수첩을 들고 왔다.

사망 당일에는 베이커라는 사람과 만난다고 쓰여 있었는데 댄버스도 그가 누군지 몰랐다. 전화번호가 같이 있어 걸어보니까 산부인과였다. 파벨은 그녀가 자기 아길 가졌을 거라고 막심이 자기 애까지 죽였다고 개소릴 했다. 댄버스는 재판에서 했던 대로 막심에게 손가락을 겨눈다.
대령은 사망날 레베카가 만났던 베이커라는 산부인과 의사를 보러 런던에 가게 되자 나도 동행한다. 용의자인 막심은 맨덜리에 남게 돼서 나와 막심은 연애 초반처럼 다시 애틋해졌다.

런던으로 간 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레베카는 임신이 아니라 6개월 판정받은 암으로, 자살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정리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댄버스는 자기마저 속였냐고 배신감을 느낀다. 모든 남자를 장난감 같이 갖고 놀다가 자기와 같이 침대에 누워서 그들을 비웃지 않았냐고.

나가 역에 돌아와 막심가 만나 다시 사랑을 확인하던 중에 저택 쪽이 밝아져서 가니까 댄버스가 머리를 푼 채로(항상 올백에 쪽머리를 함) 불을 지르며 웃고 있었다. (아.... 이래서 레베카 포스터에서 R이 타올랐나 싶었다..) 댄버스를 진정하러 간 막심 위로 잔해가 스러지며 무대가 어두워졌다.

...

다시 밝아진 무대에는 처음 오프닝 때처럼 나와 나가 그린 그림이 다시 나온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나의 곁으로 낯익은 남자가 깁스를 한 채로 다가온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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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에서 엄기준 님(막심 역할)이 한 바퀴를 빙글 돌아서 장난치니까 박지연 님(나 역할)도 따라서 돌고 옥주현 님(댄버스 역할)까지 돌았다ㅋㅋㅋㅋㅋ 그리고 이 셋은 각자 넘버를 부르고 끝났다...ㅠㅠㅠ

솔직히 노래는 옥주현 님과 박지연 님이 잘했다. 엄기준 님은 화내는 연기가 실감 났다. 그런데 정말 옥주현 님 티켓 파워가 어째서 대단한지 이 관극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댄버스 캐릭터에 맞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스피커 부실 것 같은 소리를 낸다. 멀리서 봐도 건강하고 힘이 좋아 보인다...

사랑하던 레베카가 죽고 얼마 안 돼서 가뜩이나 성에 안 차는 막심이 새로 데려온 여자가 레베카의 한 이면인 '드윈터 부인'을 차지하게 돼서 얼마나 화가 났는지는 이들이 마주한 첫 장면부터 알겠다. 옥댄에는 언제나 뚜렷한 분노가 느껴졌다. 마지막에 저택과 본인까지 태우고 죽는 건 강렬하고 압도됐지만 결국은 자기 파괴적인 결말을 맞아서 아까웠다. 사실상 주인공인 댄버스가 '부인'이며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고 집안의 전부인을 그리워하고 추종한다는 게 퀴어 코드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집안을 노리고 접근한 데다가 정숙하지 못했던 레베카가 그렇게 무서운 여자로 그려지는 게 맞나 싶다. 결국 이 여자에게 폭력을 사용해 죽인 데다가(원작에선 아예 총으로 죽였다고 함. 절레절레...) 그 후유증으로 불쑥불쑥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막심이, 금세 연고도 없는 순진한 어린 여자와 재혼한 이 남자가 더 끔찍하지 않나. 근데 나는 왜 이런 놈을 사랑해서 가본 적도 없는 곳까지 가서 텃세와 무시를 받다가 남자를 지키고 살인죄를 같이 숨겨주고 삶을 이어가냐고요.

레베카는 너무 유명하고 옥댄은 기대해서 걱정했는데 좋았다. 2020년 최고의 만족하는 공연을 1월부터 봐버린 건가 싶었는데 지금 코로나로 예매한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돼서 어쩌면 1분기는 일단 이 레베카가 유일하고 최고인 공연이 될 지도 모르겠다.